특히 숙론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구체적 기법들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학술회의의 모든 발제를 오전에 마치고, 점심 이후에는 네 시간 가까이 끊임없는 숙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최 교수는 “붙박이 의자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의자를 선호한다”며, 의자를 동심원 형태로 배열해 안쪽에는 핵심 발제자와 토론자를, 중간에는 전문가를, 바깥에는 학생과 일반 참여자를 배치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서너 시간 대화를 이어가면 대부분의 참여자가 자연스럽게 발언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110~111쪽).
그밖에도 현장에서 곧바로 활용할 만한 조언들이 적지 않다. 숙론이 침체될 조짐을 보이면 진행자가 ‘선의의 악마(devil’s advocate)’ 역할을 맡아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점, 아이디어는 공격하되 사람은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토론이 막히면 작은 모둠으로 나누라는 조언 등이 그것이다. “너댓 명 단위의 작은 모둠으로 나눠 10~30분만 따로 논의한 뒤 다시 모이면 거짓말처럼 분위기가 살아난다”(194쪽)는 말은 특히 인상 깊다.
나는 최재천 교수의 문제의식과 방향성에 깊이 공감한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한 에세이 형식이다 보니, 조직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문제해결 시스템’ 차원의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역사 속 숙론과 회의 문화의 전통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사실 한국사는 ‘회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의 제가(諸加)회의, 백제의 정사암회의, 신라의 화백회의는 모두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던 숙론의 장치였다. 특히 신라 화백회의는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부결한다”는 만장일치 원칙으로 유명하다. 『신당서』는 이를 “여럿이 모여 상세히 의논해 결정한다"고 기록했고, 『삼국유사』 또한 “대신들이 반드시 함께 모여 의논하면 그 일이 이루어졌다[其事必成 기사필성]”고 전한다. 인상적인 점은 신라인들이 결정짓는 것보다는 충분히 논의하는 과정을 더 중시했다는 사실이다. 회의를 단순한 다수결의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다. 특히 조선은 ‘회의의 왕국’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회의를 통해 국정을 운영했다. 그 중심에는 세미나식 어전회의인 경연(經筵)이 있었다. 최재천 교수 역시 경연을 “조선의 군왕이 신하들과 함께한 공부 모임”이라고 소개하며, “하루에 세 번씩 경연을 벌여야 했던 조선의 왕들은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숙론』에서 제시한 현대의 숙론 기법들이 이미 세종시대에 훨씬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구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질문과 토론 중심으로 진행된 경연은 하버드식 토론수업을 떠올리게 하고, 집현전 학사들의 장기 합숙 토론은 ‘브라운 백 런치 미팅’을 연상시킨다. 또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며 미래 시나리오를 따져보는 정책 논의 방식 역시 세종시대 국정 운영의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