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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세종이야기’ 제26호] 사람은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세종의 됨됨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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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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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교육에 의해 바뀔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세종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단 조건이 붙어 있다. 어려서 바른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 세종은 사람의 성품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보지 않았다. “보통 사람[中人]들은 착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세종실록 15년 3월 17일).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세종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눈앞의 이익에 쉽게 흔들리고, 사사로운 관계에 얽매여 판단을 그르치기 쉽다. 따라서 그들은 성인(聖人), 곧 훌륭한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성인이란 “사물을 통찰하고 아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다. 새롭게 전개되는 사태의 진전을 꿰뚫어 보는 힘[洞照事物 통조사물]과, 현재에 매이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하는 능력[明見萬里 명견만리]을 갖춘 리더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세종실록 15년 3월 17일).

사람은 길러질 수 있는가

세종은 사람의 됨됨이, 즉 품성을 어떻게 보았을까? 세종 문헌, 즉 세종을 만든 문헌과 세종 때 만들어진 문헌에 기록된 ‘본성’ 또는 ‘품성’에 대한 몇몇 사례를 통해 그의 인성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성 여울물론이다. 세종에 따르면 사람의 품성은 ‘여울물[湍水 단수]’과 같다. “동쪽을 터뜨려 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뜨려 놓으면 서쪽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사람의 품성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非定性命 비정성명] 어떤 방향으로 터놓느냐에 따라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는 가변적 존재라는 뜻이다(세종실록 18년 11월 7일).
그렇다면 무엇이 인성을 좌우하는가. 세종은 무엇을 듣고 보고 자라느냐가 결정적이라고 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좋아함과 미워함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며 공경하는 마음을 익힌다. 반대로 나쁜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 그에 상응하는 인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강희맹, <국역 사숙재집> 329쪽). “진(秦)나라 2세 호해(胡亥)가 본성이 나빠서 그리 된 것이 아니다. 조고(趙高)에게 배우고 익힌 것이” 그릇되었기 때문이다(<국역 치평요람> 제8집). 결국 자라면서 듣고 보는 바가 한 사람의 됨됨이를 빚어낸다는 통찰이다.

무엇을 듣고 보며 자라느냐가 그 사람을 만든다

세종이 이처럼 정치 교화를 강조한 것은 허물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는 사람의 잠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재위 초, 탐오죄로 탄핵을 받은 강원도 관찰사 유사눌에 대해서 세종은 “사람에게는 스스로 새로워지는 이치가 있다[人有 自新之理 인유 자신지리]”면서 그를 보호했다(세종실록 4년 2월 25일). 세종은 인간을 단죄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보았다.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이야기 들려주기’가 효과적이라는 세종의 생각이다. “무릇 세자를 교양하는 방법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아름다운 일을 들려주는 데 있다. 그것은 마치 초나라에서 나고 자라면 초나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세종은 말했다(세종실록 13년 1월 30일).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 자연스럽게 좋은 말과 선한 생각, 바른 행동이 따라 나온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옛 선인들은 이야기를 통한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 서당과 밥상머리에서 어른들은 공자와 맹자의 이야기, 그리고 당태종 일화를 아이들의 귀에 배도록 거듭 들려주었다.

둘째, 지도자 인성 책임론이다. 세종은 사람을 지도자[聖人 성인]와 보통 사람[中人 중인]으로 구분한 다음, 전자 즉 지도자의 책무를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지도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물을 통찰할 수 있고, 아주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 “의심으로 꽉 차서 일마다 머뭇거리는” 보통 이하의 사람들을 이끌 책임이 있다(세종실록 15년 3월 17일).

자신지로(自新之路), 스스로 새롭게 길을 열어가도록 하다

세종은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잘못을 저지른 인재에게도 스스로 새로워질 기회를 열어주었다. 뇌물 사건으로 파직된 종성군수 김후에게 재기의 기회를 준 일이나, 여진 정벌 과정에서 패배하고 보고를 누락해 파직된 여연군수 김윤수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한 사례가 그러하다.
특히 김윤수를 복직시키면서 세종은 “사람의 마음이란 잃었던 직책을 다시 맡겨주면,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마음을 고치고 생각까지 바꾸게 된다[欲免前愆 改心易慮 역면전건 개심역려]”라고 하였다(세종실록 17년 6월 17일). 곧 세종 자신이 뭇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인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을 실행하였다.

셋째, 든 사람 시작론이다. 세종과 그 시대 사람들은 ‘든 사람’이 되는 과정, 곧 배움의 과정을 매우 중시했다. 《대학》의 영향을 받은 세종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우선시했다. 먼저 제대로 된 지식을 깨우칠 때 비로소 ‘성의정심(誠意正心)’의 바른 인성을 갖출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에야 비로소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 곧 난사람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본 점이다. 한마디로 세종은 ‘덕성’이나 ‘잘남(arete)’ 이전에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깨닫는 지혜(sophia) 를 중시했다.

세종, 성과 이전에 사람됨을 갖춘 리더

세종 자신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 배우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력을 갖춘 ‘든 사람’, 상대를 배려하고 함께 일하고 싶은 품성을 지닌 ‘된 사람’, 마침내 국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 ‘난사람’이었다.
《세종실록》을 보면, 그는 배우기를 좋아하여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지적 능력이 출중한 ‘든 사람’이었다(든사람 세종). 그가 사망했을 때 신하들이 중국에 보낸 부고에는 그를 두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았다[好學不倦 호학불권]”고 기록했다(세종실록 32년 2월 22일). 그 덕분에 일찍이 경서는 물론이고 역사책과 외교 문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의 세종이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의외로 뛰어난 소견을”(세종실록 총서)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넓고도 깊이 있는 책 읽기의 덕분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세종의 위대함은 지적 능력에만 있지 않았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원로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먼저 살폈다(된사람 세종). 부왕 태종은 재위 말년에 충녕(세종)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마음이 너그럽고 크고 씩씩하고 의젓할[莊重 장중] 뿐더러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孝悌 효제] 겸손하여 주위 사람들을 공경하는[謙恭 겸공]” 사람이라고 말했다(태종실록 18년 6월 17일).

굶주린 백성이 충녕대군을 찾아간 이유

왕이 되기 전 세종, 곧 충녕대군의 모습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기록이 하나 있다. 1415년(태종 15년) 11월의 실록을 보면, “걸식하는 사람이 미처 진휼을 받지 못하여 충녕대군에게 찾아갔다”고 한다. 어떤 사정으로 그날 구휼 식량을 받지 못한 한 걸식자가, 왕이나 세자 양녕이 아니라 여러 대군 가운데 한 사람인 충녕대군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 것이다. 그날 식량을 얻지 못하면 가족 모두가 추운 겨울날 굶주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누구를 찾아가야 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어진 마음으로 널리 알려진 충녕대군의 문을 두드렸고, 끝내 가족을 살릴 양식을 안고 돌아갈 수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보고를 받은 태종의 반응이다. 태종은 먼저 굶주린 백성을 빠짐없이 살피지 못한 담당 관리의 책임을 엄하게 물었다. 다음으로 그는 어린 충녕이 평소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지니게 된 연원을 짚어 주었다. 곧 ‘왕 자신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을 가엾이 여기는 모습을 충녕이 곁에서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익혔다’는 것이다(태종실록 15년 11월 6일). 다시 말해, 어린 세종의 어진 인성은 타고난 기질만이 아니라, 가까운 어른의 삶과 태도를 보고 배우는 과정 속에서 길러졌음을 보여준다.

말을 성과로 증명한 리더

마지막으로, 세종은 ‘난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단지 말에 그치지 않고 그 말을 실행하는 지행일치의 사람이다. 특히 성과를 가지고 그 공동체를 더 나은 사회로 발전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재위 기간에는 물론이고 후대에도 세종은 가장 성공적인 군주로 평가받았다. 재위 초반부에 그는 심각한 자연 재해로 “이 임금 때문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심히 어렵다”는 백성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세종실록 5년 3월 5일).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가 사망했을 때 ‘생생지락하는 나라를 만든 임금’으로 평가받았다. “30여 년 동안 백성들이 전쟁을 보지 못하고 편히 살면서 생업을 즐겼다[按堵樂業 안도낙업]”는 평가가 그것이다(세종실록 32년 2월 22일).
그뿐 아니다. 그는 후대의 율곡 이이로부터 “사민부서(斯民富庶)”를 연 군주, 즉 백성의 살림을 넉넉하게 하고[民富 민부] 인구가 많아지게[民庶 민서]” 했을 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잘살 수 있는 길을 터놓아 우리나라 만년 운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는 극찬을 받았다(이이, 《성학집요》). 이처럼 세종은 개인적인 학문 역량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을 감동시 킬 정도의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고, 결과적으로 높은 성취를 거둔 지도자였다.
여기서 한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기업 현장에서 인성 좋은 인재를 과연 어떻게 가려 뽑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솔직히 말해 면접 몇 번으로 한 사람의 됨됨이를 완벽하게 판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력서와 스펙은 가능성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세종의 통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더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좋은 사람을 ‘가려 뽑는 것’보다, 조직이 사람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다. 사람의 품성을 여울물에 비유한 세종의 말처럼, 인재는 본래 고정된 존재라기보다 조직의 문화와 리더의 언행에 따라 선한 방향으로도, 그 반대로도 흘러갈 수 있다. 좋은 조직문화와 리더의 언행이 사람을 바꾸기 때문이다.
또 다른 비판도 가능하다. 세종이 말한 어린 시절의 교육 원칙이 이미 성인이 된 CEO에게는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다. CEO 역시 여전히 배우는 존재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자신과 비슷한 생각만 되돌려 듣는 ‘에코 챔버’에 갇히기 쉽다. 세종이 강조한 것은 단지 어린 시절의 교육만이 아니다. 누구를 가까이하고 어떤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느냐가 사람을 만든다는 보다 근본적인 원리다. 그가 그토록 경연이라는 열린 독서와 토론의 장을 자주 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좋은 사람을 찾는 것보다 사람을 좋게 만드는 조직을 만드는 것, 그리고 리더 자신이 끝없이 배우며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것. 바로 여기에 세종 인성론의 현대적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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