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에서 글의 서두에서 제기된 지인의 질문, 곧 ‘AI 시대의 글쓰기와 공부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AI가 문장을 만들어 주는 시대라 해도 글쓰기 수련이 필요한 이유는, 글쓰기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생각을 다루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인지는 문장을 꾸미는 문장가가 아니었다. “시 삼백을 외워도 외교 현장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말처럼, 그는 글로 현실을 움직이고 외교적 난관을 돌파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쓰기를 가장 잘 보여 주는 텍스트가 바로 《훈민정음》 서문이다. 그의 글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정인지의 글은 언제나 큰 원리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른바 메타적 접근을 통해 독자가 개별 소재, 곧 ‘문자’라는 도구에 매몰되지 않도록 먼저 시야를 열어 준다. 예컨대 《훈민정음》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문자를 만들어 만물의 정을 통하게 하고 삼재(천지인)의 도리를 문자에 실어 후세 사람들이 함부로 바꿀 수 없게 하였다.” 그가 쓴 《아악보(雅樂譜)》 서문에서도 비슷한 접근이 나타난다. “음악은 성인이 성정을 기르고, 신과 사람을 화하게 하며, 하늘과 땅을 자연스럽게 하고, 음양을 조화시키는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 문자를 인간 사회의 기술이 아니라 우주 질서의 표현으로 보았고, 후자의 경우 음악을 곧 우주 질서 그 자체로 파악했다.
둘째, 정인지의 글은 현실의 결핍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그는 큰 원리에서 출발하지만 곧 당대가 직면한 문제로 시선을 끌어내려, 독자―곧 왕과 신민―로 하여금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하게 만든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그는 중국 문자를 빌려 써 온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다.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 깊은 뜻)를 이해하기 어려워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이 통하지 않아 괴로워한다.” 문자가 단순한 학습 도구를 넘어 배움의 궁극 목적에 이르게 하는 매체이자, 공정한 재판을 가능하게 하는 국정 운영의 토대임을 보여 준 것이다.
《아악보》 서문도 같은 구조를 보인다. 음악이 본래 성정을 기르고 신과 사람을 화하게 하는 것임에도, 현실에서는 국가에 보관된 악기가 충분하지 않았고 악장의 출처조차 불분명했으며, 악공들이 임의로 덧붙인 부분까지 있어 신빙하기 어려운 상태였음을 지적한다. 그가 쓴 또다른 글, 《치평요람》을 올리는 전(箋)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에는 본받고 경계할 사례가 넘치지만, 날마다 수많은 정사를 처리해야 하는 국왕에게는 서적이 지나치게 많아 오히려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지식의 과잉이 낳는 문제를 정확히 짚어낸 셈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정인지가 이러한 결핍을 결코 해결 불가능한 난제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문제를 진단하는 데 머물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설계와 정비의 출발점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