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을 탐구하기 위해 나는 강독 시간에 세종실록 7년 10월 16일 기사를 함께 검토했다. 그리고 당시 인물들의 행적을 ‘잘한 경우’와 ‘잘못한 경우’로 나누어 살폈다. 특히 후자의 예로서 세종 재위 전반부의 나라 살림을 맡은 유정현 이야기를 읽었다. 실록에 따르면 유정현은 “고리대금 사업가”(세종실록 7/4/13)로 백성들의 원망을 샀고, 빚을 갚지 못하면 집안의 솥단지까지 빼앗아 갈 만큼 인정사정없는 수전노로 묘사된다(세종실록 6/2/29). 그럼에도 세종은 그를 국가 재정을 맡은 인물로 기용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하나의 파생 질문이 떠오른다. 사회적 비난을 받던 관리를 경제 수장으로 중용한 세종의 판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은 세종 8년(1426) 5월 15일에 실린 ‘유정현 졸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구두쇠로 이름난 유정현은 세종 7년(1425) 음력 4월 봄 가뭄 때, 볍씨를 백성에게 빌려주어야 할지를 묻는 세종에게 이렇게 답했다. “신의 집에서 높은 이자를 감당하면서까지 꾸어 가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백성이 심히 궁핍하지는 않은 듯합니다”(세종실록 7/4/13). 사금융을 운영하며 체득한 감각으로 시중의 경제 상황을 가늠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발언을 들은 세종이 그를 꾸짖거나 비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신 세종은 다만 “볍씨를 뿌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답했을 뿐이다. 그의 단점(사람들의 비난)을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 것이다. 유정현이 좌의정으로 72세에 생을 마쳤을 때, 사관은 그를 “정사를 처리함에 가혹하고 급하여 용서함이 적었으며, 집에서는 재물에 지나치게 인색하여 자녀에게조차 곡식 한 말[斗升]도 주지 않았고, 오랫동안 호조를 맡아 출납에 극히 인색했다”고 평가했다(세종실록 8/5/15). 요컨대 그는 지나치게 인색한 인물이었지만, 그 성향 덕분에 세종 초년의 연이은 흉년을 버텨낼 수 있었던 셈이다.
이어서 나는 안순의 이야기와 함께 세종이 강조한 “반드시 써야 할 곳”, 곧 하급 관리의 식사비와 기근 때의 백성 구휼 등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 돈을 어떻게 써야 그 값어치를 다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 참여자는 앤드루 카네기가 도서관 건립에 나서게 된 계기로 어린 시절 경험한 ‘앤더슨 대령의 도서관’을 들며, “일모작 인생에서 축적한 부를 이모작 인생에서 사회를 위해 품격 있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독 참여자는 2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코칭 강사, 대학 교수, 속기사, 취업준비생, 산불 전문가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들은 각자의 문제의식에 따라 읽은 대목을 발제하고 의견을 나누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매번 일종의 ‘강독의 현상학’을 경험한다. 세종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현전 선비들이 평소 독서할 때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다가도, 진강에 이른 글에서는 힘을 다해 정밀히 살피므로[用力精察], 의문이 생기는 곳이 대체로 많다[疑處蓋多]”(세종실록 13/10/28)는 장면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