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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세종이야기 제11호] 세종은 정말로 노비 폭증의 원흉인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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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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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영훈 교수는 세종 시대 노비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왕조는 노비를 죽인 주인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같은 책, 37)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주인이 노비를 고의로 죽인 경우를 엄히 다스렸다.


1437(세종 19) 114, 세종은 집의 가장이 관청에 알리지 않고 노비를 때려죽였을 경우, 노비가 죄를 지었다 해도 장 100대를 치고, 죄도 없이 죽인 자는 장 60대에 유배 1년을 명하라고 했다. 또한 14406월에는 노비를 죽인 자는 물론, 그 사실을 숨긴 이웃이 있다면 해당 고을의 수령까지 벌하라고 명했다.

 

이는 노비의 생명을 임의로 빼앗는 행위를 국가 질서에 대한 범죄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집현전 관리 권채나 이색의 손자 이맹균 등 명문가 출신 관리들조차 계집종을 학대하거나 살해한 혐의로 파직·유배 처분을 받았다(14279, 14406). 또한 자신의 여종을 임의로 살해한 안주인 역시 처벌받은 사례가 14385월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세종은 노비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이를 엄격히 적용했다. 따라서 세종 시대를 노비를 죽여도 죄를 묻지 않던 시기로 규정하는 것은, 실록의 사료와 명백히 배치되는 왜곡된 해석이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세종 이후 노비의 법적 권리가 박탈되어, 주인이 마음대로 침탈하고 심지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 노비가 노예적 신분으로 전락한 것은 세종 때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근거는 불분명하다. 이 교수의 사실 왜곡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세종이 1426년에 노비구살(歐殺) 금지법을 제정하려 했으나 변계량 등의 반대로 좌절되었다며, “호랑이 같은 신하들의 반대에 세종이 주저앉았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1426년 윤724일 세종이 형조에 내린 전지(傳旨)를 보면, 이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 정반대다. 세종은 임금이라 할지라도 노비의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노비 역시 하늘이 낸 백성[天民]”이므로 자의적으로 형벌을 가해 죽게 한 자는 당시 형법인 대명률에 따라 사형[絞刑]시키라고 명했다. , 세종은 호랑이 같은 신하들의 반대에 주저앉기는커녕, 노비구살금지법을 직접 관철시킨 군주였다흥미롭게도 이 교수도 1998년 논문 한국사에 있어서 노비제의 추이와 성격에서 이 전지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할 만한 전거는 어디에도 제시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나아가 세종은 노비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세종이 이류(異類)인 노비의 자식을 노비로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같은 책, 63)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이 어떻게 가능한지, 실록의 기록을 직접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교수는 세종이 노비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한 여러 제도적 조치들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세종은 노비 부부에게 보다 넉넉한 출산·산후 휴가를 허용했고((세종실록 12/10/19, 16/04/26), 80세가 넘은 노인 천인을 모두 면천(免賤)시켜 자유 신분으로 전환하도록 했다(세종실록 29/9/6). 또한 노비의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우려해 그 수를 제한하려는 조치를 취했으며(세종실록 25213), 궁궐에서 베푼 양로연(養老宴)에 천인들의 참여를 허락하는 등 신분을 넘어선 포용의 정책을 보였다특히 세종은 고령의 천인에게 면천뿐 아니라 일부에게는 관직까지 부여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이러한 기록들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언급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짚어볼 것은, 과연 노비 인구의 대폭발이 실제로 있었는가 하는 문제다. 이영훈 교수는 “15세기에 노비 인구가 대확장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지금까지 필자가 검토한 바로는 명확한 근거 없이 추론과 가정을 덧붙인 주장에 불과하다. 보다 정밀한 통계적·사료적 검증이 필요하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섣불리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문제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사실에 입각한 바른 서술[擧事直書]을 통해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논박으로 지식은 성장한다

모든 논박은 위대한 성취로 간주되어야 한다.” 칼 포퍼는 추측이 없었으면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인류 지식의 도약은 없었을 것이고, 엄밀한 논박이 없으면 근거 없는 주장과 거짓 이론을 판명할 길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성한 추측과 고집스런 편견을, 사실의 연단(鍊鍛)을 거쳐 바른 지식으로 자리매김해주는 것이야말로 학자의 고결한 의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훈 교수나 또 다른 분들의 재논박을 기다린다. 내 나름대로 실록을 토대로 논박을 해보았으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생산적 논쟁의 불모지인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변화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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