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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단군 이야기에 숨어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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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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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연구자들에게 단군 이야기는 고난의 잔()’이다. 우선 검토해야 할 기존 연구가 너무 많다. 국내에 간행된 2,500여 건의 학술논문과 5,700여 권의 단행본을 검토하기란 참으로 난감하다. 더 큰 난관은 단군을 둘러싼 첨예한 시각차이다. 한쪽에 국조단군상(國祖檀君像)’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단군상의 목을 자른다. 대한민국 교육기본법에서 '홍익인간' 대목을 삭제하려는 입법이 발의되자 우리 교육의 핵심 가치와 이념을 훼손하려 한다면서 교육계 사람들이 벌떼같이 반발하여 철회되었다. 이 때문에 이 고난의 잔을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한국형 리더십의 중요한 메타포를 담고 있는 <삼국유사>를 지나칠 수는 없다.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상사의 리더십을 물어보았더니

한국형 리더십이란 조직 현장에서 한국인들이 실제 경험하고 있는 리더와 팔로어의 관계 및 리더십의 특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어떤 리더를 실제로 기대하고, 언제 신명나게 일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형리더십연구회에서 2008년에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한국의 리더들은 성취열정상향적응은 매우 잘한다고 평가되었다(5점 만점에 각각 3.45, 3.43). 일을 수행함에 있어 난관을 극복하고 끝까지 성취해내는 정신(성취열정), 환경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하여 적절히 대응할 줄 아는 역량(상향적응)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반면 하향소통’, 즉 하급자들의 말을 듣고 좋은 아이디어가 실현되도록 도와주는 일을 제일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5점 만점에 2.99).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비전공감' 역량 역시 낮은 점수를 받았다(5점 만점에 3.19). 말하자면 한국의 직장인들은 자기 상급자가 트렌드 변화를 파악하고 설정된 목표를 추진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구성원들의 말을 경청하고 비전을 공감시키는 역량은 크게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백기복 외, “한국형 리더십” 2010).

 

비전공감과 하향소통이 가져오는 놀라운 리더십 효과

흥미롭게도 단군의 아버지, 즉 환웅은 한국의 직장 상사들이 제일 못하는 2가지를 잘 하는 리더였다. <삼국유사> 첫 부분을 보면, 상제(上帝) 환인의 아들 환웅은 하늘 아래 인간 세상을 구하는 데 뜻을 아버지에게 자주 내비쳤다. 아버지 허락을 받은 환웅은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묘향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비전, 즉 사람들 사이[人間]를 고양시켜[] 더 수준 높은 세상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구성원들을 설득시켰다.

 

흔히 홍인인간을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라고 해석하지만,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던 13세기 지식인들에게 人間(인간)사람(human)’이 아니었다. 人間이란 인간 세상혹은 사람들 사이를 지칭할 때 사용되곤 했다. 사마천의 <사기>, 이백이나 소식의 시(), 그리고 고려 때의 이곡 등의 숱한 문헌에서 그 사실이 확인된다. 어쨌든, 곰과 호랑이로 상징되는 구성원들이 환웅의 말을 듣고 음식 절제와 동굴 생활이라는 금기[] 지키기에 동참한 사실이 중요하다. 서로의 수준을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그의 홍익인간 비전에 그들이 공감하고 따랐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환웅은 소통의 리더였다. 환웅은 인간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소망을 아버지 환인에게 이야기하고 허락을 받아낸다(상향소통). 환인은 그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삼국유사>에 기록되었듯이, 환웅은 굴속으로 들어가 곰과 호랑이를 만나 그들의 소원, 즉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램을 경청했다(하향소통). 그리고 자기 절제를 거친 초극(超克)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해법을 제시했다. 그 해법을 충실히 따른 곰은 마침내 여자의 몸으로 전환했고, 그 웅녀는 다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번에도 환웅은 그녀의 소원대로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천제 환인이 결정하고 지시한 게 아니었다. 그는 아들 환웅의 뜻을 받아들여 인간 세상에 내려가도록 도와주었다. 마찬가지로 환웅 역시 곰의 소원을 경청하고 수용했다, 그 결과, 단군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열렸다. 비전공감과 하향소통이 가져오는 놀라운 효과를 단군 이야기는 드러내고 있다.

 

단군이야기의 진짜 주인공 환웅이 특별한 이유

<삼국유사> 첫머리에는 세 종류의 리더가 나온다. 첫째는 해모수 유형이다. 해모수는 어느 봄날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내려와 북부여를 세웠다. 그는 하백의 딸 유화에게 접근해 스스로를 천제(天帝)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강가에 있는 집으로 유혹해[] 사통한[] 후 떠났다. 둘째는 금와 유형이다.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가 자식 없음을 아쉬워하여 산천에 제사 지내자 연못가 큰 돌에서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이가 나타났다. 왕위를 물려받은 금와는 유화가 유혹당해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방안에 가둬 숨겼다. 유화가 알을 낳자 짐승들에게 던져주거나 길에다 버리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알을 깨고 나온 주몽을 금와는 견제하다가 어리석게도 준마를 주어서 도망치게 만들었다.

 

셋째, 환웅 유형이다. 그는 천제(天帝) 환인의 아들로 하늘에서 내려와 신시(神市)를 세우고,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 환웅은 해모수와 달리, 오랜 시간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할[] 준비를 했다. 아버지를 설득해 인간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았다(천부인 세 개). 화려한 오룡거를 타고 내려와 여자를 유혹해 임신시키고 떠난 해모수와 달리, 그는 자기 절제[]에 성공한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환웅은 또한 금와와 달리 분명한 목표, 즉 홍익인간이라는 비전을 세웠다.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풍백·우사·운사라는 중간 리더를 뽑아 공동체가 잘 돌아가게 만들었다. 신이(神異)하게 태어났지만 그가 다스린 나라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금와와 달리, 환웅은 세상에 머물러 살면서 이치로 변화시켰다[在世理化 재세이화]. 그는 잠깐 내려와 자기 욕심만 채우고 떠난[遊世無化 유세무화] 무책임한 해모수나, 세상에 머물러 살았으나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在世無化 재세무화] 무능한 금와와는 분명히 다른 리더였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정치가나 기업의 리더 중에는 해모수 유형이나 금와 유형이 많다. 선거 때만 잠깐 지역구에 내려와 유권자들을 유혹하다가 당선되자마자 오룡거를 타고 여의도로 돌아가는 해모수 유형의 국회의원들이 그렇다. 선수들과 함께하기보다 재택근무부업 논란에 휩싸이다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해고당한 클린스만 축구 감독 역시 해모수 유형이다. 금와 유형은 더욱 많다. 반짝이는 커리어로 자리를 맡았지만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기업 리더들이나, 대통령 선거 후 낙하산으로 내려와 밥값도 못하는 공공기관의 장이 그런 사람들이다.

 

일연의 스토리텔링 전략

<삼국유사>를 읽을 때면 십 여 년 전 로마에 갔을 때 일이 생각난다. “로마제국의 전설 속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를 믿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이탈리아의 지인은 안 믿을 이유가 무어냐(Why not)?”고 대답했다. 그렇게 재미있고 용기까지 주는 이야기를 안 믿을 이유가 있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사실 로물루스 신화나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고 따지는 자체가 넌센스다. 그보다는 고려 지식인 일연(一然, 120689)의 고민과 문제해결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하던 13세기 말은 원나라의 지배가 노골화되던 시기였다. 항몽(抗蒙)전쟁을 주도하던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실권자 최의가 피살당하고(1258), 배중손이 이끌던 삼별초마저 평정되었다(1273).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고려는 여몽연합군을 구성해서 일본정벌을 추진해야 했던(1280-81), 그야말로 고려의 국가적 자주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일연은 영웅이 일어나려 할 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서 환웅의 이야기를 서술했다.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온 고구려 시조 고주몽과, 주변 사람들에 의해 추대된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이야기를 통해 상이한 조상들의 리더십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그는 단군을 고주몽이나 박혁거세보다 위에 배치시킴으로써 고조선의 승계국이 삼국이며 그 삼국을 통일한 나라가 바로 고려임을 암시했다. 특히 그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중국의 전설적인 국왕인 요임금 때와 비슷하다고 역설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a is the message)”라는 마셜 맥루언의 말처럼, 일연은 <삼국유사>라는 책(미디어)을 통해 우리는 이 국난을 충분히 이겨낼 저력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그보다 30~40년 전에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겠다며 팔만대장경(1236-51)을 제작한 일도 같은 맥락이다. 고도의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시대의 난관을 극복하려고 했던 일연의 지식경영에 새삼 감탄하며, 문득 우리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이 글은 <휴넷CEO>(20246)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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