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구소수간》은 서른 번쯤 읽었다는 것이 세종의 회고다. 세종실록에 실린 여러 과거시험 문제와 김종서 등에게 보낸 수많은 왕의 편지 어투를 보면 《구소수간》을 통한 작문 연습의 흔적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단종실록》은 위의 ‘세종백독’을 전하는 대목에서, 그보다 23년 전인 1432년(세종 14년)에 있었던 세종과 승지 윤형(尹炯)의 대화를 전한다. 새로 동부승지에 임명된 윤형이 경전과 사서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아뢰자, 세종이 물었다.
“경은 그 책들을 몇 번이나 읽었기에 그렇게 또렷이 기억하는가?” 윤형이 “겨우 서른 번쯤 읽었습니다”라고 답하자, 세종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러 책을 모두 백 번 읽었다[予於諸書 皆百讀 여어제서 개백독]. 다만 《초사(楚詞)》와 《구소수간》만은 30번 정도 읽었다.” 세종백독에 대한 이야기는 윤형과의 대화 외에도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서거정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임금은 세자 시절 책을 읽되 반드시 백 번을 채웠다”고 전했다. 또 《세종실록》에는 “경서를 읽을 때는 반드시 백 번을 넘게 읽고[必過百遍 필과백편], 제자백가와 역사서는 반드시 서른 번을 넘게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덕분에 세종은 옛일과 지금 일을 두루 통달하게 되었다고 한다[博通古今 박통고금](세종실록 32년 2월 22일).
그렇다면 세종은 왜 같은 책을 백 번씩이나 읽었을까? 그 이유의 하나는 왕자 시절 그가 겪었던 특별한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왕 태종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던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바로 독서삼매였다. 살벌한 정치 공간 속에서 심리적으로 버텨내는 도피처가 책이었다. 그 과정에서 세종은 ‘정신을 고양시키는 길’이 책 속에 있음을 발견했다. “거듭해서 책을 읽고 숙독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바루고 뜻을 성실하게 하는 공부”라는 그의 말이 그것이다.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책을 깊이 읽으면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그 안에서 생겨난다는 게 세종의 신념이었다.
왕위에 오른 뒤에도 세종은 독서를 통해 늘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책을 보는 중에 그로 말미암아 생각이 떠올라 나랏일에 시행한 것이 많았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책 속의 지식과 지혜를 통해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찾곤 했다. “배운 대로 행하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고, 그 행함이 돈독한 사람을 군자(君子)라 하며, 그것이 통달한 경지에 이른 분을 성인(聖人)이라 일컫는다.” 이 말은 세종이 서른 번 이상 읽었다는 《순자》에 나온다. 세종은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와 하늘의 원리가 서로 통한다고 보았다. ‘세종을 만든 책’, 곧 세종이 읽고 깊은 영향을 받은 책 가운데 하나인 《율려신서(律呂新書)》를 보면, 훌륭한 사람, 즉 성인이란 하늘의 원리, 곧 자연 질서 속의 리듬을 발견하고 그 리듬에 맞추어 자신과 나라 다스림을 조율(調律, tuning)하는 사람이다.
세종의 통찰력은 바로 이러한 독서에서 길러졌다. 특히 그는 많은 책을 넓게 읽기보다, 몇 권의 고전을 정해 깊이 파고드는 공부를 중시했다. 몇 권의 핵심 고전을 선별해 정밀하게 읽고, 익숙해질 때까지 되읽는 이른바 ‘전경지학(專經之學)’이다. 좋은 책을 정밀하고도 익숙하게 되읽다 보면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글의 뜻을 이해하지만, 여러 번 읽는 사이에 그 속에 담긴 이치와 맥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실행해야 할지도 함께 떠오른다.
세종이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으로 나랏일에 시행한 것이 많았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종에게 독서는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통찰을 얻는 과정이었다. 세종의 학습법을 따라 배우고자 했던 조선 후기의 정조에 따르면, 책을 전일하고 치밀하게 읽다보면 절로 환히 깨닫는 곳[豁處 활처]이 있는데, 그곳은 새것을 읽는 데서가 아니라 새롭게 읽는데서 발견된다고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에 대한 그의 해석이 그 예다. 즉위 초년 경연에서 온고지신을 “옛 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이라고 풀이하는 신하에게 정조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초학자는 그렇게 이해하기 쉽지만, 옛 글을 익히다 보면 그 속에서 새로운 맛을 깨닫게 되고 이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더욱 깊이 알게 되는 것이 참뜻이라는 것이다.
온고(溫故)의 과정, 곧 이미 읽은 것과 경험한 것을 다시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보는 안목, 즉 통찰력이 커진다는 것이 정조의 생각이었다. ‘지신(知新)’을 새것이 아니라 새롭게 깨닫는 공부법으로 이해한 그의 통찰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