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을 읽으며 눈에 들어온 또 하나는 소통의 방식이었다.
세종은 경연(經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경연은 신하가 왕에게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자리로만 머물지 않았다. 세종은 질문했고 신하들은 자신의 의견을 냈다. 생각이 다르면 서로 논박했다.
세종실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의논하라 함은 서로 논박하면서[互相論駁] 각기 마음속에 쌓인 바를 진술하라[各陳所蘊]는 것이다.”
단순히 여러 사람의 의견을 한 번씩 듣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고 논박하면서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고 더 나은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세종의 강점은 모든 답을 알고 있었다는 데 있지 않았다. 질문하고, 듣고, 다른 의견이 충분히 드러나게 하고, 그 과정을 거쳐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세종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접한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누구와도 의견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소통의 수단이 늘어난 만큼 다른 생각을 더 잘 듣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SNS에서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의 주장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반면, 다른 의견은 내용을 충분히 듣기도 전에 배척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본다. 조직에서도 최고책임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올라가고 불편한 현장의 목소리가 걸러진다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세종은 “내가 깊은 궁궐에 거처한다고 신하들이 내 눈과 귀를 가리고 막으려 하는구나”라며 옹폐(壅蔽)를 경계했다. 정보와 목소리가 중간에서 막히고 가려지면 최고책임자라고 해서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경계였다.
세종실록을 읽으며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다른 의견을 만나면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이제는 그 의견 속에 내가 보지 못한 현실이 들어 있지 않은지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다름이 곧 틀림은 아니라는 것, 토론이 소모가 아니라 더 나은 답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반복되는 문제를 사람의 헌신에만 맡기지 않고 역할과 제도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세종에게서 배웠다.
2025년 1월 말 공직을 마친 뒤에는 관심 있는 산불재난 문제를 보다 자유롭게 연구하고, 한국산불학회 활동을 통해 정책당국과 전문가, 현장과 민간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연결하려 하고 있다. 공직에 있을 때보다 다른 목소리를 듣고 연결하는 일이 많아졌다.
세종은 주요 문제를 개인의 판단과 일회성 대응에 맡기지 않았다. 사람에게 역할과 책임을 맡기고, 서로 다른 의견을 들으며, 반복되는 문제는 제도와 시스템으로 풀어가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