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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칼럼 - 세종, 나를 바꾸다 2] 안남섭 코치 - ‘글로벌 코치형 리더’ 세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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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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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칼럼 - 세종, 나를 바꾸다 2] 안남섭 코치

‘글로벌 코치형 리더’ 세종을 만나다

- 세종실록 완독 소회


 

2024년 한여름에 시작한 《세종실록》 강독 과정을 마침내 완주하고 나니,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찬 감동과 묵직한 울림이 밀려온다. 지난 2년간 40여 회 동안 격주로 실록을 읽고 토론하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과거 나에게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훌륭한 성군’ 정도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실록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주한 세종은 그보다 훨씬 크고 깊은 인물이었다. 그는 백성의 삶을 진심으로 어루만진 홍익애민의 휴머니즘 사상가이자 철학자였으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인재를 발굴해 함께 연구한 탐구자였다. 또한 상대를 존중하면서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최고의 실용주의 정치가였다.


특히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강국을 이룩한 세종의 ‘상대 존중 대화법’과 ‘문제 해결 역량’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를 접하면서 세종을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글로벌 코치형 리더’의 모델로 깊이 연구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겼고, 그것이 이번 완독 여정에 참여한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글로벌 코치형 리더의 모델 세종 

우리는 지난 70여 년 동안 눈부신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풍부한 경험 자원을 축적했고, 각 분야에 지혜와 경륜을 갖춘 전문가들도 길러냈다. 그런데도 높은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낮은 청년 취업률과 행복지수라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토록 애쓰고 노력하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근본적인 물음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번 실록 읽기와 토론, 여러 학유들의 깊이 있는 발제를 통해 “세종이라면 오늘날의 갈등과 난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풀어갔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갈등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소중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5가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종의 정치는 역지사지의 휴머니즘에서 출발했다.
세종의 모든 정책은 통치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데서 시작되었다. 자신이 더위를 느끼자 좁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더위로 목숨을 잃는 일을 “참으로 불쌍하다”고 여겨 물동이를 가져다 두게 한 일은 세종의 공감 능력을 잘 보여준다(세종실록 30년 7월 2일). 그의 공감은 마음속 연민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이어졌다.

세종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지표들을 보았다면 이를 단순한 통계 수치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성가애야(誠可哀也), 참으로 가엾다”고 안타까워하며 지도자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삼았을 것이다. 사람의 고통을 정확히 바라보고 그 속에서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는 능력, 그것이 세종 정치의 출발점이었다.

역지사지의 휴머니즘과 시스템적 대안의 도출

둘째, 세종은 ‘제도명비(制度明備)’를 통해 시스템적 대안을 마련했다.
세종은 일시적인 금지령이나 지도자의 지속적인 감시에 의존하지 않았다. 지도자가 일일이 살피지 않아도 공정하게 작동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법(貢法)이다. 그는 관리의 주관적 재량을 줄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설계했다. 오늘날 세종이 복지와 고용 정책을 이끌었다면, 자원이 불공정하게 배분되지 않도록 투명하고 객관적인 수혜 기준부터 마련했을 것이다.

정보의 투명성도 중시했다. 시장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표준 저울을 만들어 반포했듯이, 오늘날에는 취업 정보와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을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에서 비롯되는 불신과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세종은 사안의 성격에 따라 의사결정과 실행 방식을 달리했다.
세종은 갈등이 첨예한 사안일수록 소통의 방식을 더욱 정교하게 구분했다. 세제 개혁을 추진할 때 약 17만 명을 대상으로 여론을 조사한 것처럼,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서는 ‘종다지규(從多之規)’의 원칙에 따라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를 끌어냈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세종은 “주자의 말이라도 다 믿을 수 없다”고 할 만큼 이념이나 교조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가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민생에 실제로 이로운가’였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의심이 해소된 사안에서는 과감하게 결단했다. 청년 일자리 구조 개혁이나 국가의 미래가 걸린 과제처럼 기득권의 반대가 심한 난제라면, “의심이 없는 일은 독단으로 한다”는 신념 아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실행했을 것이다. 폭넓게 듣되 결정할 때는 책임 있게 결단하는 것, 이것이 세종의 책임 정치였다.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한 인재를 찾아라

넷째, 세종은 ‘전재개과(全才蓋寡)’의 현실적인 인재관을 실천했다.
세종은 “모든 재능을 갖춘 완전한 인재는 드물다”고 보았다. 과거의 허물이나 한두 가지 단점만으로 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았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거나 특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 역량, 곧 실학을 갖춘 사람이라면 과감히 등용해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을 찾기보다 각자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 능력을 공적인 문제 해결에 활용한 것이다. 이는 인재가 부족하다고 한탄하기에 앞서 이미 있는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고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섯째, 세종은 고독한 투쟁을 감당한 책임 있는 정치가였다.
내불당 논쟁 등에서 세종은 성리학적 도그마에 맞서 정치의 자율성과 실용주의를 지켜내려 했다. 말년에는 오심과 구역질을 비롯한 건강 악화와 감정적 어려움을 겪었고, 믿고 의지하던 인재들의 죽음도 잇달아 지켜봐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지속 가능한 국가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 때로는 홀로 모든 비판을 감당하는 ‘독부(獨夫)’처럼 보일 만큼 고독한 통치자의 길을 걸었다. 그 모습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과 고뇌의 무게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과정에서는 여러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다. 특히 ‘세종리더십 5종 신기’를 갖춘 세종강사를 선발하는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 일은 매우 뜻깊었다. 또한 다산 생가와 서희 묘소,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여주 세종대왕릉인 영릉과 세종문회 등을 찾는 현장답사를 통해 책에서 배운 세종의 지혜를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시스템적 정밀성 부족과 소통의 왜곡에서 비롯된 문제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풍부한 경험 자원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다. 그런데도 갈등 비용은 터무니없이 크고, 힘을 모으지 못해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종이라면 이러한 현실을 ‘시스템의 정밀성 부족과 소통의 왜곡’에서 비롯된 문제로 진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 기준을 세우는 제도명비와 현장 중심의 실용주의를 통해 갈등을 줄이고 공동체의 역량을 하나로 모았을 것이다.


4학기의 과정을 마치는 지금, 나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도 세종의 대화법과 소통 모델, 문제 해결 리더십을 비롯한 ‘세종리더십 5종 신기’를 꾸준히 연구하고 확산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일상과 조직, 나아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세종의 리더십이 구체적으로 실천되도록 앞장설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함께 실록을 읽고 토론하며 귀한 배움을 나누어준 선배와 동료 학유들, 그리고 이 긴 여정을 이끌어주신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글/ 안남섭 (사단법인 미래준비 이사장, 전 한국코치협회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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