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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자 칼럼 - 나이 일흔에 만난 세종 1]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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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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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 외 다른 나라들에서 세종과 필적할 만한 인물이 과연 누가 될 수 있을까 상상해 봤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의 통치자였다면? 아이작 뉴턴이 영국의 왕이었다면? 비교할 만한 대상 자체를 찾기가 힘듭니다.”


미국의 TV 드라마 작가이자 제작자, ‘스타트렉’ 시리즈의 작가로 잘 알려진 조 메노스키(Joe Menosky)가 쓴 소설 『킹 세종(King Sejong the Great)』 서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세종대왕을 한마디로 설명하고 싶은데 묘수가 없다. 성군이었다거나 한글 창제, 측우기와 해시계 같은 과학기술의 발명, 수많은 업적을 늘어놓자니 진부하기도 하고, 뭔가 부족하고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다 몇 해 전 세종 연구에 빠져들면서 미국 작가가 쓴 이 소설의 한국어 번역본을 단숨에 읽었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 작가의 시선이 신선하기도 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아이작 뉴턴을 한 인물에 빗댄 발상은 나라면 결코 떠올리지 못했을 비유였다. 그 순간, 내가 세종을 말하는 데도 조금은 명분이 생긴 듯했다. 왜 우리는 600년 전 왕조 시대의 통치자를 지금도 소환하며 배우려 하는가. 세종 리더십이라니! 그것도 21세기 첨단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그렇다. 세종은 예술가였고,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난 리더였다. 재주를 하나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불러들이고, 격려하고, 칭찬하며 함께 명작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 불후의 종합 예술가였다.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00여 년 전의 작품과 인물이라고 해서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아이작 뉴턴 역시 근대 과학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한 그의 업적이 어느 한 시대에만 머물러 있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아이작 뉴턴, 그리고 여기에 왕의 역할까지 더해야 세종이 된다. 나는 이만하면 꽤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와서 마침내 일을 이룬다 

3년 전, 나는 경기도 여주시 주민이 되었다. ‘여주의 힘’에는 세종대왕의 기운이 은연중 스며 있는 것이 아닐까. 여주 하면 영릉, 영릉 하면 세종대왕, 세종대왕 하면 박현모 교수. 대략 이렇게 연상되기 마련이다. 물론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말이다.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세종실록을 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60대 후반부터 고전 공부에 재미가 붙더니 태종과 세종으로 관심이 이어졌고, 결국 여주에서 세종대왕 연구의 대가를 만나게 되었다.

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 연구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벽면을 가득 채운 멋진 글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와서 마침내 일을 이룬다(待人而成).”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세종 말씀 박현모 가려 뽑고 영묵 씀”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이 작품에 단박에 매료되었다. 속으로는 ‘바로 이 말이야!’ 하고 외치면서. 해마다 세종실록에서 한 말씀을 뽑고, 한글 서예의 대가 영묵 강병인 선생이 작품으로 만들어 세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품격 있는 신년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고, 다음 해의 말씀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연결하라(紹述先志).” 세종의 말씀은 마치 주술처럼 다가왔고, 동시에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WWW(World Wide Web). 연결하라. 사람이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2년 과정 4학기로 편성된 ‘세종실록 강독’에 합류했다. 마침 4학기가 시작되려던 때였다. 새 기수까지 8개월을 기다리는 대신 4학기부터 먼저 수강하기로 했다. 격주로 밤 8시부터 11시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이렇게 열렬하고 흥미진진한 수업이 또 있을까. 역시 세종대왕의 하루하루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일일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세종실록 읽기

세종은 1418년 8월 즉위하여 1450년 2월, 54세로 승하하였다. 재위 기간은 32년이다. 4학기는 세종 25년(1443)부터 말년까지 여덟 해를 다룬다. 사계절에 비유하면 겨울에 해당하는 시기다. 실제로도 세종에게는 혹독한 시련과 인내, 그리고 위대한 성취의 시간이었다.

임종을 앞둔 마지막 일주일에도 몸이 잠시 회복되었다 싶으면 곧바로 정무를 보았다. 실록에는 “사무를 재결하는데 처리하기를 물 흐르듯 하되, 모두 끝까지 정밀하게 하기를 평일과 다름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세종은 실로 장엄하게 떠나셨다. 너무도 참담하고 애달프고 숙연한 마음으로 ‘임금이 영응대군 집 동별궁에서 훙하였다’는 2월 17일의 실록 기사를 읽으며, 나 역시 숨이 멎는 듯했다.

세종 재위 25년(1443) 12월 30일, 임금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기사가 조용히 등장한다. 내 느낌만이었을지 모르지만, 한글 창제는 마치 007 첩보작전처럼 신중하고 신속하며 비밀스럽게 추진되었던 것 같다. 왕이 하는 일이 이토록 베일에 싸여 진행되다가 어느 날 단 한 줄로 기록되다니,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3년 뒤 훈민정음이 반포되기까지, 끊임없는 내우외환 속에서 이어지는 세종의 하루하루는 일일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왕조실록이 재미있을 리 있을까 싶었지만, 세종실록은 뜻밖이었다. 극 중 명대사를 들으며 드라마에 빠져들듯, 임금과 신료들이 주고받는 대화, 경연과 윤대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모두 재기와 품격이 넘치면서도 신랄하고 진지했다. 세종의 대화법은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임금님이 이렇게 스마트하실 줄은 미처 몰랐다. 실록 자체가 무궁무진한 콘텐츠의 보고다. 사건과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경사도 있고 비극도 이어진다.
  

노인이 임금께 꽃을 바칩니다

이 무렵 세종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고 시력도 실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과로로 몸을 병들게 하면서도 백성과 나라를 위한 방책을 마련하기 위해 단 하루도 멈출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재위 26년에는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을, 이듬해에는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을 잃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446년 3월에는 소헌왕후마저 세상을 떠났다. 아, 전하께서는 얼마나 깊은 슬픔의 심연을 견디셨을까.

 

비련의 세종은 재위 말기에도 초인적인 의지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내 완수했다. 병든 몸을 이끌고,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을 완성하고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함으로써 한글의 정체성을 굳건히 세워 놓았다. 세종의 노년은 고통과 슬픔 앞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한 시간이 아니라, 겨레에게 가장 빛나는 유산을 남긴 시간이었다.

 

세종은 백성에게 기꺼이 다가갔고, 백성 또한 임금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런 모습을 보여 주는 낭만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임금이 온양으로 온천 휴양을 갔을 때의 일이다. 행차 도중 용인 부근 냇가에서 잠시 쉬며 악공 열다섯 명이 늦은 밤 풍악을 연주했다. 백성들에게는 왕의 행차와 연주가 얼마나 큰 구경거리였을까. 돌아오는 길에는 한 노인이 꽃을 받들고 길가에 꿇어앉아 있었는데, 임금은 목면 한 필을 하사하였다. 화동이 아니라 노인이 임금께 꽃을 바치는 장면을 떠올려 보니, 참으로 순박하고 진실하며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세종을 현대 사회에 소환

‘나이 70에 만난 세종’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를 살아가는 초고령사회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선두에 선 나는 세종실록을 읽으며 이상하리만큼 학구열이 솟고, 누군가와 나누고 가르쳐 주고 싶은 의욕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세종실록을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매일 아침 ‘세종 혹은 이도로부터 온 편지’를 써볼까. ‘손자에게 들려주는 세종대왕 이야기’ 유튜브를 해볼까. 전 세계 재외동포 사회의 세종학당을 활용해 성인을 위한 세종실록 강좌를 운영해 보면 어떨까.

 

세종은 1397년 5월 15일에 태어나 1450년 2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세였다. 세종이 지금 내 나이까지 사셨다면 무엇을 하셨을까. 나는 문득 ‘세종의 써드 에이지(The Third Age)’를 상상해 본다. 상왕이 되어 조금은 자유인의 삶을 누리며 한글 보급에 더욱 힘썼을 것이고, 어쩌면 출판사 사장 역할도 즐겨 맡지 않았을까. 나에게 소설을 쓸 재주가 있다면 『세종의 써드 에이지』라는 제목으로 한번 써보고 싶다.

 

나는 어떻게든 세종대왕을 현대 사회에 다시 소환하고 싶다.

‘유레카!’ 하고 뛰어나가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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