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강릉으로 강의를 겸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호캉스를 위해 두 권의 책을 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는 최근에 나온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이하 <이규보>)이고 다른 하나는 정인지 등이 편찬한 <치평요람>입니다. 두 책을 읽어보니 제 취향은 역시 이규보 보다는 정인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규보>는 저자 강민경 선생님의 전공(한문학) 거름망의 영향이 있겠지만, 패관잡기에 가깝습니다. 조정에서 파견된 패관(稗官)들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채집하여 올린 잡다한 기록처럼, <이규보>는 780여 년전 고려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듯 보여줍니다. 술과 안주, 낮잠, 포도 등을 자유분방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 이규보의 글을 맛볼 수 있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늦은 나이(23세)에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직을 못 구해 10여 년간 구직활동 끝에 겨우 미관말직을 얻었지만(32세) 동료의 비방으로 금방 면직되는 그의 모습은 결코 옛날 얘기 같지가 않습니다. 창운주필(唱韻走筆), 사람을 시켜 운자를 부르게 하고는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시를 지어내는 빠른 글짓기에 뛰어난 그였고, 정지상의 시가 김부식의 글보다 뛰어나다고 한 안목의 소유자였습니다. (* 김부식이 "버들 빛은 천 가닥 푸르고/ 복사꽃은 만 점이 붉도다"라고 지었더니, 정지상이 이를 보고 "버들 빛은 가닥가닥 푸르고 / 복사꽃은 점점이 붉도다"라고 하지 않는가 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이규보> 178쪽)
하지만 제가 볼 때, 이규보는 정지상 근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교과서에서도 배웠던 정지상의 <님을 보내며>라는 시가 그렇습니다.
"비 갠 긴 둑에 풀빛 짙어 가는데/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강물에 더해만 가는데..."
섬세한 감성을 이처럼 압축하여 보여주는 시를 이규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무리 중요한 말을 하더라도 시문에 담아내지 못하면 사람 축에 넣아주지 않았던 고려시대의 인문학적 기풍을 잘 보여줍니다.
제 마음에는 이규보의 신변잡기의 글보다는 나란히 펼쳐놓고 읽은 책, <치평요람>이 훨씬 와 닿았습니다. 세종의 명을 받아 정인지 등이 편찬한 이 책은 중국과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들의 리더십 이야기를 다채롭게 보여줍니다.
<치평요람>에는 우선 통찰력 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승리를 목표로 하는 장수는 간략하면서도 꼭 필요한 것만 챙기는 병법을 채택하고, 방어를 중요시하는 장수는 상세하고도 복잡한 병법을 채택한다"(1권 115쪽). "국가를 흥성시키는 지도자는 백성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쇠망하는 나라의 지도자는 귀신 말을 들으려 한다"(<치평요람> 1권 177쪽) 등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규보 글보다는 정인지 등이 편찬한 <치평요람>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건 바로 역사 속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특히 안목을 새롭게 하고 반전의 묘미가 있는 스토리가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제나라 환공이 정료(庭燎), 궁궐 뜰에 등불을 켜놓고 인재들의 말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인재들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일 년이 지날 무렵 어느 시골 사람이 제환공을 찾아왔는데, 자신을 '구구단 외는 실력을 가졌다'고 소개했습니다. 겨우 그 정도 재주로 왕을 만나려느냐며 거절하려는 제환공에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지금 뜰에 등불을 켜고 기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음은 임금께서 천하의 현군이기 때문입니다. 사방의 인재들은 자신이 임금보다 못하다고 여기므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구구단이 비록 하찮은 재주이지만, 임금께서 오히려 예우하신다면 그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태산은 작은 돌도 밀어내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된 것입니다."제환공이 좋아하며 그를 예로 대접하니, 사방의 인재들이 줄지어 모여들었습니다. (<치평요람> 1권 119-120쪽).
제환공이 왕자(공자)시절에 음모와 암살, 망명 등 정치적 혼미를 겪은 후 중원대륙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인재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환공이 맥구라는 곳에서 83세의 노인을 만나서 그의 축원을 요청했습니다. 맥구의 노인은 장수함과 현자와의 만남이라는 축원을 했습니다. 한 가지 더 해달라는 환공에게 노인은 "임금으로서 여러 신하와 백성들에게 죄 짓지 않기"를 축원했습니다.
기껏 좋은 점을 축원하다가 마지막에 '죄 짓지 않음'이라는 말을 들은 환공이 얼굴빛을 바꾸며 "신하가 임금에게 죄 짓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임금이 신하에게 죄 짓는다는 말은 처음"이라며, 그 말을 수정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맥구의 노인은 엎드려 절한 다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세번째 축원이 앞의 축원보다 더 크고 중요합니다. 자식이 어버이에게 죄를 지으면 고모나 숙부를 통해 해명하여 부모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지으면 왕의 측근을 통해 사죄하여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지으면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옛날 걸왕이 탕에게 죄를 짓고, 주왕이 무왕에게 죄를 지은 후 어찌 되었습니까?" 이 말을 들은 환공이 그를 부축하여 수레에 태우고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임금이 신하에게 죄 지으면 혁명으로 쫓겨나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며, 욕된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된다'는 맥구 노인의 축원이 환공의 '정치혁신'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권 121-122쪽)
제가 하려는 것은 '한국인을 위한 탈무드 만들기'입니다. 세종시대 집현전 학사들이 중국과 우리나라 인물들의 리더십 이야기를 엮어 <치평요람>을 편찬한 것처럼, 고조선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리더들의 성공과 실패 이야기를 '소통' 관점에서 추려내 서술하는 일입니다. 올 여름은 아마도 흥미진진할듯 싶습니다. (끝) |